Vida Cotidiana

새 신분증. 공원. 그리고 까미노

희안이 2017. 4. 12. 00:07
드디어 네번째 신분증이 나왔다.
네번째 학생신분의 카드. 유효기간이 4개월하고 20여일밖에 남지않은.
늦게 신청한만큼 늦게 나오는 거지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카드 유효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왠지 모르게 당당하게 다닐 수 있을테니까.
수업이 끝나고 부활전에 새 신분증을 찾아야겠다싶어 comisaria에 가니... 역시 성주간이라그런가.. 사람이 거의 없더라. 금새 찾고 나왔다.
그리고 어제 인터넷으로 봐 둔 물건을 사러 Decathlon으로.
버스를 탈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걸어봤다. 구글은 38분이라고 얘기하지만 글쎄욤... Cabecera까지 25분정도 걸려서 간 걸로 짐작되니 내 걸음이 빠른건가 구글이 너무 느린건가 알 수가 없다.
디캐슬론에 들르기 전에 처음으로 Cabecera에 갔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시작공원? 선두공원? 뭐 이쯤되려나. 아무튼. 리오의 반대쪽 끝자락에 있는, 그러니까 강 줄기가 들어오는 초입, 시작지점. 지금은 지류를 다 막아 공원이 된 리오 뚜리아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라 이름이 그럴거고 근처에는 동물원과 역사박물관이 있는 곳.
늘 가봐야지 했는데, 물론 오늘도 다 보지는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좋더라. 엄청 쏟아지는 햇살에 파란하늘과 공원이라니. 게다가 분수도 있고 오리배도 있고.


부활절이 지나고나면 일단 한국에서 오는 손님맞이를 잠시 해야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엠마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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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그 길을 다녀온 지 만 9년이 되었다. 그러니 십주년 기념이라고 해도 되는거겠지. 2008년 4월 5일 시작한 길이니까.
사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냥 부활 휴가를 집에서 보내기는 왠지 아쉽고. 이미 오기로 한 손님이 있어 오래 시간을 낼 수는 없고. 유럽 대부분이 그렇지만 대중교통비가 참 비싸고 우리동네에서 저어기 까미노는 반대방향과 다름 없어서 멀기도 하고. 다른 데에 여행갈까 생각하다가 혹시나하며 인터넷을 뒤져 까미노 정보로 가득한 홈페이지를 발견하고. 구역별로 친절하게 나누어 정보를 정리해 뒀길래 찬찬히 보니 팜플로나에서 로그로뇨까지만 딱 걸으면 되겠다 싶어서 그냥 일단 교통편부터 알아보기 시작한 게 이미 지난주.
생각보다 멀어서... 그만둘까 했는데 사라고사에서 이동이 의외로 용이해서(코로나 아라곤 만세) 일단 사라고사행 왕복 표부터 구입해버렸다.
거기서 팜플로나로 로그로뇨에서 사라고사로 또 이동하면 되니까.

까미노를 다시 걷기로 결심하고-그래봐야 나흘이지만- 나와함께 그 길에 있었던 친구들-모두 따로 시작해서 길에서 만나 함게 걷다가 헤어졌다가 다투었다 화해했다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잡은 친구들-에게 얘길하며 다들 함께 추억에 젖어버렸다.
처음만난 순간, 나누었던 대화들, 함께 걸었던 길. 어느 하나도 잊혀지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우리의 길을. 지금은 모두 다 다른 시간대에 살아 한번에 대화하기조차 힘들면서도 함께 기억하는 우리의 그 시간들을.
메세지를 남기며 나도 울컥. 뒤늦게 답을 달며 울컥했다는 친구와 또 뒤늦게 대화들을 보고 울컥했다는 또다른 친구의 얘기. 팜플로나 들어가면서 있었던 일, 그 길에서 각자 만난 각자의 천사들하며...
지금 다시 만나 이야기를 시작해도 며칠 밤을 새며 바로 어제 일이듯 얘기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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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디캐슬론에 들른 건 엠마오 준비물을 사러. 얇디얇은 여름용 침낭과 스포츠타월과 등산양말과... 등등 어제 홈페이지에서 본 저렴이들을 실제로 확인하고 사려고 들렀다. 예전에 걸을 때의 물건들은 하나도 없으니까. 배낭은 그냥 있는 배낭 아무거나. 신발은 일반 운동화. 트레이닝복 바지로 편리한 바지 대신. 참 웃긴게 그때 그 길에서 썼던 모자와 배낭에 매달고 다닌 조가비를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곳에 올 때 가져왔었는데 그 둘만 10년의 세월을 거슬러 다시 길 위에 있겠구나란 생각이 드니 또 뭔가 기분이....
나이스하게 침낭은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으나 수건과 바람막이는 엄청 추가지출을.
그리고 걸는 연습겸(왜??) 또다시 리오를 따라 산책을.
Cabecera부터 집까지의 리오는 잘 가게되지 않는 곳이라 굳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사진도 찍고.
중간에 분수대가 있어 사진찍어야지 생각했는데 왠일인지 물을 다 빼서 멋진(진짜?), 그림자 나오는 사진 찍으려던 마음은 완전 실패.
대신 길을 길을... 나무와 나무를. 그 사이사이 보이는 하늘을.

 

 


늘 생각하지만 참 좋은 동네다. 우리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