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목요일 예절
매년 성삼일 예절은 카테드랄에 갔었는데 올해는 왠지 파트리아르카로 가고 싶어서 굳이.. 아니 사실은 작년에도 가고 싶었는데 계속 시간 확인을 못해서 놓치고 놓치고. 그나마 부활전야미사는 참여했던 게 전부였는데 올해는 큰 맘먹고 시간 확인부터 해두는 부지런함을 떨었다.
오늘 예절은 7시부터 시작.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갔는데-언제 문을 열지 모르니- 이미 이십여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기다리고 있더라. 누가 먼저 왔느니 어쩌느니의 실갱이가 잠시 있다가 6시 반 문이 열리고...
이 곳 Patriarca는 트렌토 공의회 이후부터 안티오키아의 총대리주교였던 산 후안 데 리베라가 설립한 신학교로 16세기 중엽에 생겼다. 물론 산 후안 데 리베라는 발렌시아의 주교였었고.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으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신학교로서의 기능은 문을 닫은 상태이고 아마 Patriarca 장학금이 있는 정도로 알고 있다(홈페이지에 의하면). 이 곳, Patriarca는 산 니콜라스의 복원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발렌시아의 시스티나 성당으로 일컬어졌던 곳으로 작년 부활때 비디오를 올리기도 했지만 성당이 다 프레스코로 장식되어져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 니콜라스에 발렌시아의 시스티나라는 이름이 옮겨갔다기보다는 발렌시아의 시스티나로 불릴 성당이 두개가 되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원래 신학생들이 사용했던 경당의 개념이었기 때문에 성당으로 들어가는 정문이 일단 일반적이지 않다.
예전에 가이드투어를 한 번 하면서 들은 얘기가 몇 개 있는데 도무지 기억은... 그렇지만 파트리아르카는 참 예쁜 곳이기도 하다. 산 니콜라스와는 다른.
일찍부터 기다리며 수다같이 떨던 할머니들이 굳이 내 자리를 본인들 옆에 맡아주셔서 같이 앉아 예절에 참여하는데 강론때부터 바로 옆 할머니가 울컥한다. 음. 강론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여긴 여느 다른 성당처럼 목요일 발씻어주는 예절은 없다. 대신 모든 성가는 그레고리안으로. 원래 목요일 예절 대영광송부터 반주없이 미사 때에 노래를 한다. 그때부터는 수난을 기념하며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고 종도 치지 않는데 성찬례때 복사서던 신학생이 잠시 잊고 첫 종을 조금 쳤더니 신부님이 몸이 돌리며 놀라는. 그거 보고 나는 왜 또 잠시 웃었을까. 옆자리 할머니는 계속 울컥하고.. 나는 웃고.. 예절이 끝나고 행렬할 때보니 울컥해서 눈물 글썽인 사람들이 의외로 보여서 사실 조금 놀랐다. 물론, 나도 가끔 예절 참석하며 울컥할 때가 있기도 했지만, 오늘은 그냥 또 한 번의 부활을 이 곳에서 지내게 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더 컸을지도.
이 곳에서 예절을 할 때마다 신부님들이랑 부제가 입는 제의는 몹시 독특하다. 일반적인 제의가 아닌 제의를 입는다. 멀리서 보면 조명을 받아 금실이 반짝대지만 가까이서 보면 오래된 낡은 제의라 아랫부분은 헤어진 듯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아름답다. 예절만큼이나. 게다가 예절도 몹시 전통적인 예절을 그대로 지키며 미사를 진행하는 곳이기도 하고. 무어라 딱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 곳만이 주는 느낌이 있다. 게다가 중앙 제대에는 스페인의, 발렌시아의 바로크시대 화가인 리발타의 최후의 만찬 그림이 제대화로 그려져있어서 오늘이랑 왠지 더 잘 어울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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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이 끝난 뒤 성체 이동을 위한 경당으로의 행렬.. 이 경당은 지난 연말까지던가 복원한 타피스트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경당이다. 지금은 가이드투어로만 들어가서 볼 수 있는데 극적으로 공개 마지막 날 가서 구경을 했었더랬지. 그때만 해도 경당 전체의 모습보다는 타피스트리가 위주였었는데 오늘 행렬을 뒤에서 따라가면서 보니 정말 예쁘더라. 지금까지 또 보지 못했던 행렬이었다. 같이 앉아있던 할머니들이 계속 앞으로 가서 보라고. 미사 전 수다 떨면서 성삼일을 늘 카테드랄에서 지내 여기는 처음이라고 했던 얘기에 계속 계속 앞으로 나와서 보라고 얘기해주시는.
아아.. 동네할머니들이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마지막으로 성체이동행렬 비디오를 감상하시라.
그나저나 미사 때 향을 어찌나 열심히 치시던지.. 옷이랑 머리카락이랑 온통향 냄새가 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