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a Turista

나는 다시 그 길에.

희안이 2017. 4. 20. 03:58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 길에 가고싶어졌다. 그리고 시작한다. 나의 여정은 고작 100키로. 그래서 준비도 대충하고 그냥 무작정 떠나보기로 했다.
사라고사행 버스를 타고 거기서 또 다시 버스를 타고 팜플로나로 가는길을 시작하기 위해 미리 정리해두지 않은 짐을 새벽부터 일어나 주섬주섬 배낭에 구겨 넣고 여행 후 분명히 상해있을 음식들을 처리한다는 마음으로 아침을 구겨넣고 9시 미사를 시작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부활 8부축일 내 수요일.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그리고 그 길에 함께 하는 예수님. 흔히들 부활절 이후 휴가 혹은 여행을 가면서 엠마오로 간다고들 하고 나 역시도 주변에 엠마오간다고 얘기하곤 했는데 복음까지 그러니 더 신기했다. 그리고 복음을 들으며 약간 울컥.

빗방울도 떨어지고 해서 버스로 터미널로 이동. 우선 사라고사까지. 그리고 사라고사에서 다시 팜플로나로 갈 예정이다.버스터미널에 도착하면서부터 조금씩 굵어지던 빗줄기는 버스가 출발하면서 점점 더 굵어지고 테루엘까지 계속 비가 왔다. 일기예보를 대충 훑어보았을 땐 우리 동네는 비가 와도 북쪽은 쨍할거라니 믿어봐야지. 다행인건 테루엘을 지나면서부터 해가 반짝. 사라고사로 저점 가까이 갈수록 도로 이정표에 팜플로나가 나오기 시작한다.

사라고사에 도착해 팜플로나행 버스표를 구입하고 바에서 커피와 보예리아를. 그리고 팜플로나로 출발. 버스 안에서는 무조건 자는 게 예의라 한 시간여를 자다보니 투델라라는 중간 도시. 거기서부터 또 거의 한시간 이상을 달려 팜플로나로.
예전엔 걸어서 들어왔던 길을 터미널에서부터 걸어오니 조금 다른 느낌이긴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듯 알베르게 찾는 길을또 헤메고 그리고 알베르게 도착.

9년 전처럼 다걸을길이 아니니 짐은 간단하고 단촐하고. 그대신 그때와 똑같은 모자와 그때도 가방에 매달고 다녔던 생장에서 얻은 조가비. 왜 이걸 한국에서 올 때 가져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렇게 쓰게되었다.
일단 크레덴시알을 만들고 배정받은 침대로 오니 9년전 내가 잤던 그 침대는 아니지만 같은 방에 배정. 오자마자 짐을 던져두고 사진찍기. 방도, 함께 저녁먹으며 와인을 마셨던 주방도 하나도바뀐게 없다.

혼자 실실대며 웃다가 물이랑 간단한 저녁거리를 사러 기억을 더듬어 시장을 가다보니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그 길이 보이고 함께 장보며 헤맸던 길을 보는 순간 울컥했다.

그리고 잠시 시청앞과 광장을 돌고 숙소로. 전자렌지용스파게티를 데우며 Y와 잠시 통화. 요금제 바꾸길 잘 했구나. 그냥 데이터로전화라니.
15분가량 추억을 함께 얘기하고 나누며 밥을 먹고..
침대로 돌아오니 아래에 있는 미쿡인 아저씨가 발을 밴드로 칭칭 감고있다. 발이 아프다더니.. 그래도 착한 미쿡 총각이 꼼꼼히 챙겨준다.
이게 까미노인거지.

이제 그만 쉬고 내일을 준비해야지.
나는 나흘동안, 아니 오늘 발렌시아에서 버스로 시작된 일정부터 닷새동안의 짧은 길을 걷는다.

과거와 함께 현재를 걸으며 미래를 보게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