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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a Turista

마지막 걸음

희안이 2017. 4. 25. 01:35
로그로뇨까지의 일정이 길어서 아침부터 서둘러 길을 나섰다(는 건 구라입니당). 어제 저녁 오스피탈레로와 바르셀로나 아저씨(라고 하지만 은퇴한 할아버지임)들의 도움을 받아 발은 훨씬 상태가 좋고.
늘 그랬듯 길은 긴데도 나는 여유를 부렸다. 조금 가다보니 앞에 가는 알리칸테 가족이 보인다. 우리랑 휴가 일정이 똑같아 로그로뇨까지 간다는. 8살 3딸과 부모. 함께 손잡고 걷는 모습이 참 예쁘다.

안타까운 건 이 사진을 찍자마자 길을 멈췄다. 애가 배 부분 어딘가가 아파 더 이상 걷지 못한다고. 론세스바예스부터 걸어왔다는데. 아무튼 결국 거기서 택시를 불러 길을 접어야겠다고 한다.

잠시 길을 더 가다 어제 본 미국 아줌마가 쉬고 있다. 괜찮으냐 물어보니 약도 먹고 천천히 걸어 괜찮단다.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옆으로 누군가 지나가며 인사하러 기다린다. 토모코와 대만남자. 둘 다 푸엔떼 라 레이나에서 본 동양사람. 로스 아르코스까지 같이 왔는데 숙소는 다 달랐나보다. 잠시 토모코와 길을 걸으며 어디서 잤는지 어땠는지 안부를 물었다. 숙소에 네명만 있어 아주 편하게 잤단다. 배가 고파 길을 멈추기로 하고 토모코를 보냈다. 앉아서 차를 마시는데 레온 출신의 아저씨(이름을 잊었다. ㅠㅠ 쏴리)가 지나간다. 다음 마을이 고작 2키로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그래도 뭐 난 이미 쉬니까.

다음 마을인 산솔을 향해 걷다가 나보다 뒤쳐졌다 다시 먼저가는 미국할머니(알고보니 니가가는 하와이)를 다시 만나 잠시 얘기하며 걸었다. 산솔 다음인 토레스 델 리오까지만 가겠다고. 부정맥이 있어 몇번의 시술을 했고 의사가 천천히 걸으면 된다고 해 길을 안 지 15년여만에 드디어 걷게된다고. 산솔에 들러 잠시 쉬어가려고 가게에 들렀더니 커피 한 잔 사주고 싶단다. 그래서 넙죽 전 맥주요. 아침 9시 맥주 마시는 패기 보소. 앉아 맥주마시며 얘기하다 캐나다에서 온 다른 할머니를 알게되고. 떼거지로 오는 아일래드 팀에게 아침부터 맥주 마시는 놀라움을 선사하고. 다들 얘 한국인인데 스페인 사람이라며. 하하하.
하와이 할머니를 두고 길을 다시 출발. 길이 기니까...

토레스 델 리오를 들어서면서 캐나다할머니와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했다. 산솔에서 1킬로미터 거리의 마을 

여기에있는 에르미따는 입장료도 변함없이 1유로를 받는다. 캐나다 할머니랑 같이 구경하고 또 걷다가 헤어졌다가.
3킬로여를 더 걸어가다가 다시 만난 캐나다 할머니와 동행하기 시작했다. 토레스 델 리오부터 비아나까지 거의 10키로 동안은 계속 산길을 걸어야한다. 정확히 말하면 밭길.

에르미따 앞에서 다시 캐나다 할머니를 만나 동행. 조금 더 가다 오아시스처럼 있는 간이바(이런 거 정말 많이 생겼더라. 푸드 트럭처럼, 혹은 컨테이너로 만든)에 도착해 맥주한 잔 사주고 싶다는 캐나다 할머니와 잠시 휴식. 또 길을 걸어오는 다른 영어쓰는 할머니에게 오늘 이 아이가 나의 천사였다며 인사를 시켜준다. 같이쉴 때 물티슈 건네거랑 따끈한 티 한잔 건넨 게 전부인데. 그리고 쉬는데 바르셀로나 아저씨팀 등장. 비안나에서 만나자는 인사를 남기고 먼저 출발.
의외로 비안나 가는 길이 힘들었다. 숲이 아닌 고지대에 있는 밭길 사이를 그늘도 없이 계속 걷는다는 거. 게다가 어느순간 국도변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해 이게 맞는건가 고민하는 찰나 폴란드 카미노협회에서 그려둔 표시가 보이는 교통표지판을 발견. 얼마나 고마웠는지.

생각해보니 비안나 들어갈 때의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도시에 대한 기어간. 어둡기만 했던 도시. 3층짜리 침대그 있던 알베르게. 왜 그랬을까.... 기억을 더듬으니 그때 보스턴에서 온 영가이와 함께 길을 걸어서 그랬었던거다. 누구와 함께 길을 걸으면 풍경을 보는 시간을 주변을 즐길 시간을 잃어버리긴 하지만 반대로 비안나처럼 들어가기 짜증나는 길엔 오히려 아무 기억도 없게 만들어줘 고맙다는 생각이. 게다가 비안나에 대한 기억은 어둡다가 전부였었는데 도시에 들어서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있는,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 골목도 좁고 집들로 가득가득한 곳. 잠시 도시 입구에서 나와 거의 비슷하게 늦게가는 이태리포르투칼 커플을 만나 와인 한 잔 얻어마시고 같이 출발. 로그로뇨 들어가는 길에 산업단지가 있다는 말은 들었고.. 사실 로그로뇨는 Y와 끊임없이 얘기하며 들어갔던 길이라 기억이 없었고.

그래도 가끔 보이는 밭들과 포도밭을 지나 도시로 도시로.
나바라를 나와 드디어 라 리오하에 입장.
Y와 함께 이야기하며 걸었던 9년 전이 어찌나 고마운지. 

무거운 발걸음으로 숙소를 찾아오고. 늦게 도착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씻는데에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거다. 나 말고는 이미 다 씻고 끝났으니까.
마지막 숙소도 역시 성당에서 운영하는 도네이션으로 운영하는 곳. 사실 늘 그라뇽같은 느낌이길 바랬으나 그 느낌은 없었다. 지금도 그라뇽이 바닥에 패드를 깔고 그 위에 침낭을 쓰도록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함께 모여 얘기하며 수다떨고 음식 준비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돕던 그 시간을 그리워했는데. 그래서 이 곳을 선택했는데.. 딱히 그러진 않아서. 대신 저녁식사 후 모두 함께 모여(의무는 아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의외로 모두에게 좋은 시간이었던 듯. 나에게도 역시.
발 치료한다고 잠시 밴드를 올려뒀는데 그걸로 잔소리 하는 프랑스 할아버지때문에 확 상할 뻔 했던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놀라움을 보여줬다.
그렇게 마지막 밤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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