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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a Turista

로그로뇨 관광

희안이 2017. 4. 25. 03:48
일상으로 돌아가야할 시간.
열다섯명이 함께 잔 그 공간에서 의외로 코를 크게 고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게 잘 자고,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 느릿느릿 움직이고. 사람들을 하나씩 떠나보내며 나흘을 같은 숙소 혹은 같은 도시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건강히 마무리하길 바란다는 인사를 건냈다. 에스떼야에서 내 옆 침대에서 잔, 그리고 길에서도 계속 만났던 독일 아줌마가 울컥하며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고, 영어를 좀 더 잘했으면 많은 얘길 했을텐데 안타깝다고 인사를 건넨다. 나도 갑자기 울컥(아.. 늙어서 눈물이 너무 많아졌다). 알베르게에서 준비한 아침을 천천히 먹고 모두가 떠나는 시간 제일 마지막으로 알베르게를 나와 일단 사라고사 행 버스표를 사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이동.

버스표를 사고 인포메이션 근처로 이동했다. 인포메이션 앞 길 걷는 사람들 동상은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라 혹시라도 낯익은 얼굴을 볼까해서. 애매한 시간 어제 본 아일랜드 팀을 만나니 지금 술을 마신 건 아니냐고 물어본다. 지네도 엄청 마셔대면서 나 원 참...
인포 문이 열리기까지 바로 앞 바에서 차 한잔 마시면서 기다리다가 인포에서 지도와 간단한 정보를 얻고 카테드랄로 이동. 카테드랄에 들어가보니 봉헌예식이 진행 중. 미사 중인 할머니에게 다음 미사 시간을 물어보고 일단 퇴장.

미사 시간을 확인하고 성당을 한바퀴 돌고 10시 미사에 와야지라는 마음에 광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광장 옆 바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에스떼야에서 같은 알베르게에 머무렀던 독일여자애를 만났다(이름을 물어 본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고보니). 어제 비안나를 지나치면서도 인사를 나눴었는데. 그리고 에스떼야 들어가던 날 무슨 똥배짱에 선크림도 바르지않고 걸어가다 완전 팔에 화상입듯 타버려 오이를 붙이고 있던 나를 걱정해줬던. 나는 이제 길에서 떠난다고 했더니 더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는 인사를 한다. 나도 역시 그녀에게 건강히 끝까지 잘 걸으라는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걸음을 옮겨 푸엔떼 데 삐에드라 앞으로 이동. 가는 길에도 비안나에서 들어오는 낯익은 얼굴들을 마주치고. 다리 아래로 가 사진을 찍는데 한국가족이 나타났다. 팜플로나에서부터 봤지만 본인들의 세상에 사는. 그 가족을 보면서 미셸과 이낙 생각이 참 많이 났다. 물론 가족 넷이 왔으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자기들의 세상에 어느누구도 끼우지 않는다. 같은 숙소에 있으면서 그렇게 수업이 밥을 하고 계란을 삶고 간식을 준비하면서 지나치며 보이는 유일한 한국사람인 내게조차 뭐 하나 권할 줄 모른다. 준다고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본인들의 세계에서만 걷는 게.... 이러쿵 저러쿵 얘길하고 싶으나 한편으로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의 길을 평가하나싶어 늘 생각을 멈췄다. 그러고보면 미셸과 이낙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었다싶다. 물론 부부가 왔으니 좀 다를 수도 있지만 끼니때마다 밥을 해 먹을때면 늘 주변의 모든 한국사람들을 다 불러서 밥을 먹였다. 게다가 어느 도시에선가 함께 묵으며 밥을 먹자는 얘길 했었는데 내가 다른 알베르게에 있으면서 하께 하지 않았더니 그걸 너무 섭서해했었다-그때가 메세타의 끊임없는 길 16킬로미터를 걸었던, 혼자의 시간이 너무 필요한, 그리고 미사 가서 뒷자리에서 소리 못내고 통곡했던 날이었다-. 이번 한국 가족은 장성한 딸과 부모 그리고 고모 이렇게 넷이라 가족단위가 더 크긴 하지만 아무튼. 뭐 그랬다는 거다.
이 한국 가족을 뒤로 하고 벤치로 발걸음을 옮겨 앉으며 누군가 볼 수 있을까..하는데 하리가 나타났다. 로스 아르코스를 떠나고선 전혀 마주치지 못했는데 그래도 마지막에 얼굴을 봐서 너무 반가웠다. 그의 건강과 무사한 마무리를 기원하며 인사를 나눴다. 토모코도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아마 그녀는 내가 카테드랄에 들르던 그 순간 도시를 지나쳐갔나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잠시 더 머무르다 모르는 얼굴들만 나타나기에 자리를 뜨려는 순간 브라질 아저씨 커플을 만났다. 함께 맥주 한잔 하러가자고 해서-아저씨들은 아침먹으러- 결국 그 다리를 떠났다. 그리고 순례자 길을 따라 움직이다 그 길 중간에 있는 바에 가서 맥주 한 잔 마시고 다시 두 사람의 건강과 무사히 길을 마무리하길 바라며 인사를 나누고.

10시 미사를 가려 했는데 맥주 드링킹 직후 바로 가기엔 좀 그래서 다른 성당들을 구경하고 카테드랄로 가서 11시 미사 참석. 광장으로 다시 나오니 아침에 독일애를 만났던 그 바에 바르셀로나 아저씨 커플이 있다. 어제 그냥 비안나에서 자고 이제 막 들어왔다고. 함께 앉겠느냐는 초대에 나도 앉아서 almuerzo를. 배가 고파서 무언가 먹으려던 찰나에 극적으로 만났으니 나도 혼자 먹지 않아 일석이조. 아저씨들이 보까디요와 맥주까지 다 사주고(나 이번에 완전 얻어만 먹고 다녔다. 고맙구로) 함께 사진도 찍자는 얘길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캐나다 아줌마 홀리. 어제 헤어진 이후로 못 만날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또 만나고. 바르셀로나 아저씨들과 사진을 찍으며 셋이 함께 찍어달라고도 부탁. 아저씨들이 까미노에서 제일 예쁜애랑 사진찍는거라며 즐거워해줬다.  내 카메라도 처음으로. 다른사람과 함께하는 사진을 담았고. 맥주를 마시고 수다를 좀 더 떨다 한 시 무렵 아저씨들은 숙소를 잡으러 떠나고. 다시 무사히 건강하게 길을 걷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건네고 아저씨들 역시 내게 잘 돌아가라는 얘기와 살아가면서 어디선가 꼭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는 얘기를 남기며 헤어졌다. 

 

 

 


그렇게 모두와 헤어지고 어찌되었건 라 리오하에 왔으니 뭔가 기념될 먹거리를 사야겠다 싶어 일단 시장으로 이동. 근데 너무 별 게 없고 리오하 초리소만 가득파는데... 가격도 그렇고 딱히.... 싶어 밖으로 나오니 와인 보데가들이 몇 개가 보인다. 결국 리오하 와인을 한 병 구매, 그리고 바로 옆 타파스 거리로 이동.
어디를 가서 저렴하게 먹을까 고민하다가 오페르타가 있는 곳에 가 와인과 로모핀쵸를, 그리고 왠지 아쉬워 더 헤메이다가 다른 곳에 가 다른 와인과 피미엔또 레예나 핀쵸를 먹고.
버스 터미널로 이동하기 전 잠시 공원에 앉아 쉬다가야지 라는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나섰는데 K와 함께 다니던 한국 남자애를 만나 K에게 안부를 전해달라 인사를 하는 찰라 그녀가 나타났다. 나랑 거리 차이가 많아 마주치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길은 늘 기대하지 못한 만남을 만들어준다. 잠시 얘기하다 아파트를 빌렸는데 집주인과 의사소통이 안된다는 얘기에 다시 전화를 해주고, 통역해주고, 숙소계약서에 사인하는 걸 도와주고 나오니 결국... 공원은 개뿔. 물 하나 사서 터미널로 오는 게 전부. 오전 내도록 술을 마시고. 사라고사로 오는 버스에서 내도록 잠만 자고. 그리고 사라고사에서 발렌시아까지의 버스를 기다려야하는 시간동안 보까디요와 맥주를 또 한잔. 와... 내가 생각해도 무섭다 정말. ㅋㅋㅋㅋㅋㅋㅋ

나의 두번째 길이 끝났다. 어디까지 가는 지 얼마나 걷는 지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워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고마운지. 이 길은 사람들에게 마음껏 웃어도 되고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나누어도 되는 곳이고 별 것 아닌 걸 나눔에도 불구하고 몇 십배의 큰 마음을 받는 곳이다.
아마 9년 전 까미노가 끝난 후 내가 기꺼이 기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그 길에서 만났던 수많은 천사들과 그들의 웃음과 인사에서 전해져 오는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9년이 지난 지금 고작 닷새의 여정이지만 또다시 그 웃음과 마음을 가득 채워 돌아간다.
나는 일상의 길로, 그들은 걷고자하는 길로. 우리 모두의 길에 늘 행복이 함께 하길. Buen Camino, mis peregr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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