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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da en Valencia
그닥 즐겨하지 않는 정치 이야기 본문
정치라는 게 참 생활에 중요한 이야기이지만, 자칫하면 분쟁의 씨앗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갓 대학에 입학했던 시절 학생회 선배들을 따라 시위에 가끔 가면서 느낀 여러가지 것들을 집에서 얘기하다가 아빠에게 대박 깨진 적도 있고, 이러 저러한 이유로 정치는 나와 상관없으며 투표 또한 절대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을 바꾸게 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은 이야기. 돌이켜보면 좀 더 일찍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어야 했고 끊임없이 정치꾼들을 감시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결과가 지금일지도 모르다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선거 결과에 눈물을 흘린 것은 지난 대선이었다.
나는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몹시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만난 대학 동창(학생회장 출신이며 나름 운동하셨음)이 노무현의 죽음으로 그에게 실망한 얘기를 쏟아내는 걸 들으면서 더 충격을 받았다. 그랬던 내가 노무현의 그림자로 가득찬 한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 당연히 당선될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실패했다.
처음으로 선거 결과를 지켜보고 침대에 걸터앉아 울었다. 아마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얼마나 울었었는지 다음날 화장이 잘 안 먹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내 나라는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고,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떠나왔다. 그녀가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한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농담을 엄마아빠에게 남기고. 그리고 그녀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쳐졌다. 수많은 부정과 부패를 안고. 나라는 더 시끄러워졌고, 주변 정세는 더 어지러워졌고, 교활한 한 사람은 더더욱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쓸데 없이 돈을 퍼주고 있으면서 무기를 사오고, 미국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갔다.
선거 준비기간동안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누군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처럼 될 거다라는 이야기가 선거기간 중 돌아다닌 가장 악성 루머라고 하는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그런데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나는 솔직히 들었다. 늘 그에게는 친구 노무현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늘 그는 무언가 한방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옆에 누구를 두느냐에 따라서 몹시 평가가 달라질거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것으로 보인다는 거랄까.
사실 나는 정치인에 거는 기대는 없다. 정치인에게 애시당초 어떤 희망이나 기대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 돈(한국에 직접세든 간접세든 안낸 지 너무 오래되서 내 돈이라고 못하겠다)을 가져다 쓰면서 입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지네 배불리는 일이 우선인 경우를 너무 많이 봤고, 실제 386세대이며 전대협 의장으로 있으며 당시의 희망으로 불렸던, 그러나 지금 내게는 쓰레기로만 보이는 정치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학생운동을 하던 선배들이 대학을 졸업하며 어떻게 기득권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자알 누리며 사는 지 봤기 때문에 더더욱 부정적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조금 기대를 걸어보고, 조금 기다려 주기로 결심했다. 그건 그 사람을 보아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게 보이는 아픈 사람들이 그 사람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아서이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마음이 꾸준히 변하지 않고 있다는 그 모습만으로 일단은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부디, 내 나라가, 이제는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가 되길.
마지막으로 <Un abogado y militante contra la dictadura surcoreana>로 그를 소개하는 엘 문도의 기사를 링크한다.
http://www.elmundo.es/internacional/2017/05/09/5911ac0f468aeba0708b465b.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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