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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Vida en Valencia
발렌시아 카테드랄 본문
매일이 이 곳에서 지내는 마지막인 듯 생각하며 블로그 업뎃을 한참 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관광포인트인 발렌시아 카테드랄에 대해 전혀 언급한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카테드랄이야 모든 여행책자에 기본으로 나오고, 관광지도에도 기본으로 나오고 하니 굳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사실 이 블로그 처음 만든 목적은 졸업논문에 들어간 여러가지 내용들을 올려두려는 것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졸업 논문에 들어간 내용은 하나도 올리지 않아버렸네. 아, 산 니콜라스에 대한 설명은 좀 써 뒀으니 예외라고 해야하나?
사실 카테드랄도 다른 일상을 기록하거나 축제에 대해 끄적이면서 언급을 몇 번 했던 것도 같은데 카테드랄 자체에 대한 얘기는 없어서.. 그냥 써 두기로 했다.
뭐라고 써도 여행책자보다 나을테니까-이런 잘난척이라니... 지만 사실이기도 하고. 훗!
카테드랄을 알려면 일단 역사를 알아야... 어쩌구 중얼중얼 하고 싶지만 그런 건 다 패스하고, 간략하게 베이스를 설명하자면 발렌시아는 기원전 138년 로마시대에 최초로 로마 밖에 세워진 로마왕국의 도시였다. 304년 성 빈첸시오 부제의 순교-원래 사라고사 사람임-로 그리스도교 문화가 뿌리 내려지고 다른 곳들이 그러하듯이 초기 그리스도교 왕국으로 자리를 잡다가 711년 이슬랑 왕국이 세워지게 되었다. 1092년 엘 시드가 쳐들어와서 이슬람왕국이랑 전투가 있다가 왔다갔다 하다가 1238년 코로나 데 아라곤의 왕이었던 하이메 1세의 레콩키스타로 인해 그리스도교를 베이스로 한 왕국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발렌시아는 오랫동안 발렌시아 왕국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까스띠야의 이사벨과 아라곤 왕의 결혼으로 통일왕국을 건설되던 시기인 15세기 말까지 독립왕국으로 유지되어왔다. 여기서 독립왕국이란!! 복잡한 구성이니 패스. 아라곤의 왕은 발렌시아의 왕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복잡하고 세세한 역사는 뒤로하고.
1238년 하이메 1세의 레콩키스타 당시 이슬람 왕국이었던 발렌시아에는 많은 메스키타들이 있었다. 그 중 메인 메스키타가 현재 카테드랄의 자리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 위치는 메스키타가 생기기 이전 이미 초기 그리스도교들의 카테드랄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해지기도 하는 곳이다.
카테드랄 내부는 박물관과 함께 표를 사서 들어가서 보면 되니, 딱히 많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최근 박물관을 새로 리뉴얼 해서 오픈했을 뿐 아니라 카테드랄 지하까지 새로 발굴해서 초기 교회의 모습을 더 짐작하게 해 두었다. 그러니 외관과 내부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들만 얘기하는 것으로.
발렌시아 카테드랄이 처음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하이메 1세가 여전히 통치하던 1262년이다. 이 때부터 크게 4번에 걸쳐 기초를 쌓고 확장하고 탑을 만들고 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거고, 그 내부는 또 각각의 시기에 많이도 바뀌었다. 가장 마지막이 스페인 내전이후에 제단화가 불탄 이후 다시 복원을 하고, 마지막으로 2004년대에 꾸뽈라의 르네상스 시대 프레스코를 복원한 것을 마지막으로 보면 된다.
13세기 알모이나 문을 만들었고 14세기 사도의 문과 중앙제대부분과 현재 최후의 만찬 떄에 쓰인 성작을 보관해 둔 산토칼리스 소성당이 만들어졌다. 14세기 말 미겔레떼 탑이 만들어지고 15세기 르네상스시대 작가들의 제대화와 꾸뽈라 프레스코를 장식하며 분리되어 있던 산토 칼리스와 미겔레떼까지 연결하여 모두 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7~8세기 바로크양식으로 대대적으로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지금 현재 카테드랄의 정문이 된, 바로크 양식의 히에로(철) 문이 만들어졌다.
일단 가장 유명한 사도의 문부터 얘기하자면..
사도의 문이 유명한 건 사도의 문 자체도 있지만 그 앞에 있는 광장 때문이다. 비르헨 광장. 발렌시아의 대부분의 중요한 행사는 다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카테드랄에서부터 시작되는 행렬들이 있을 경우 대부분 이 문으로 나온다. 그리고 알모이나로 들어가는.
사도의 문과 같은 모양의 고딕성당 문은 아주 흔하다. 여기 뿐 아니라 다른 도시의 고딕양식 성당에도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문에 원래 있던 조각상은 현재 카테드랄 내부에 전시되어 있고 현재 문에 놓여져 있는 조각상은 모조품이라는 거.
이 이미지는 사도의 문에 세부 이미지. 여기 놓인 조각상이 다 모조품이고 진품은 모두 카테드랄 박물관에 있다.
알모이나 문은 사도의 문과 반대방향에 있는 문으로 동쪽을 향해 있다. 알모이나 문이 제일 먼저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가 메스키타는 원래 메카의 위치인 동쪽을 향해 메인 문을 만들어 두는데 그 문을 활용하여 문으로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 레리다나 다른 도시 들의 성당들의 문은 꼭 오른쪽을 향해 나 있는데 그게 모두 레콩키스타 이전 메스키타 자리였다는 거). 알모이나 문은 문 기둥에 성경의 이야기가 조각되어 있다. 왼쪽 창세기의 천지창조 얘기부터. 비록 오랜 시간이 흘러 그 형태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몇개는 알아보게 만들어져 있다. 알모이나 문 앞 광장에는 주교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에로(Hierro) 문은... 레이나광장에서 바로 들어오는 문이고 사실 이 문을 처음 본 게 10년 전 까미노 갔다가 로마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서 잠시 발렌시아에 체류한 5시간동안 처음 봤었는데... 그 땐 왠지 모르겠지만 카테드랄이 언덕 위에 있다고 착각하기도 했었다. 지금도 그 이유는 모름. ㅎㅎ 생각하면 참 이상함.
재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카테드랄에 들어서면 표를 구입하지 않아도 대충 볼 수 있도록 되어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부에 다 벽을 쳐버려서 미사 시간이외에 따로 가서 보기기 쉽지 않게 되어져있다. 평일 9시 반 이전에는 알모이나 문과 히에로 문이 열려 있어서 부지런히 서두르면 성당내부는 볼 수 있으나 박물관은 못본다는.
성당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중앙제대 제단화와 꾸뽈라 프레스코. 모두 르네상스 시대에 그려진 것인데 제단화는 평상시에는 성모님의 일생을 그린 그림 6개만 보이는데 대축일이나 수호성인 축일 등에는 제단화가 열려 그 안에 있는 성모님을 볼 수 있다-모든 카테드랄은 주보성인이 성모님이다-. 원래 스페인 내란 이전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성모상이 있었으나 내전에 카테드랄 내부가 불에 타면서 사라지고 현재는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던 폴리크롬 성모님을 모셔두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특별한 날이 아니면 쌩눈으로는 보아지지 않는다는 것. 대신 성당 내부를 가린 벽에 크게 사진이 프린트되어 보게 되어있긴 하다. 물로 불에 타기 직전 카테드랄 내부 역시.
천장 프레스코는 천사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파란 배경을 되어있다. 그 옆에 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들은 모두 바로크시대의 산물. 각 앱스에 있는 소성당들은 모두 네오고딕양식으로 repistinacion-이 단어는 발렌시아 카테드랄의 복원을 의미하는 단어다, 즉 스-한 사전에 안나온다- 떄에 고딕으로 돌아가는 복원작업을 했다. 각 소성당에 대한 설명은 카테드랄을 관람하시길.
내부의 또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산토 칼리스다. 원래 참사회용 성당으로 만들어졌다가 후에 최후의 만찬 때에 사용했다고 알려진 성작이 보관되면서 이름이 산토칼리스 경당, 까삐야 델 산토 칼리스로 명명되었는데 이 성작이 발렌시아에 보관되게 된 역사는 이러하다.
원래 로마에서 보관되던 성작은 산 식스토 2세 교황 때의 부제인 산 로렌조의 고향인 우에스까에 발레리아노 황제의 박해를 피해 보내졌다. 713년 무슬만의 침공이후 피레네지역 어디엔가에 숨겨져 있다가 1399년 아라곤의 왕인 마르틴이 사라고사에 보관했었다고 한다. 그 뒤 알폰소 5세가 1424년 발렌시아 왕궁으로 옮겼다가 1437년 발렌시아 카테드랄로 옮겨 보관되어진 이후로 계속 카테드랄에 있었다. 그 뒤 19세기 초 스페인 독립전쟁때에 이비자의 마요르까에 보관되어지다가 1916년 현재의 산토 칼리스로 가져온 이후 계속 카테드랄에 보관되어져 오고 있다. 이 성작은 실제 미사때에 사용되다가 보존을 위해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미사 때에 사용된 것이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발렌시아를 방문했을 때이다. 혹시 프란치스코 1세 교황님이 발렌시아를 혹시 방문하면 아마 미사성작으로 사용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언급할 곳은 미겔레떼 탑.
한 떄 여행을 다니면 각 도시의 탑이란 탑은 다 올라갔었던 적이 있었다. 거기 올라가면 그 도시의 모든 풍경을 다 볼 수 있으니까. 냉정과 열정사이의 그 피렌체 탑에서 모든 시내 풍경을 다 보듯이 말이다. 아무튼. 미겔레떼 탑은 발렌시아 구 시가 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총 207개의 달팽이 계단을 올라가면 미겔이라는 이름을 가진 종이 있는 꼭대기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고 날씨가 왠만큼 나쁘지 않으면 시의 모든 모습을 다 볼 수 있다. 예전에 수업때 애들이랑 같이 올라가서 저기는 뭐고, 저건 무슨 건물이고, 저건 어디고... 라고 얘기해줬더니 다들 놀란. 난 이 동네 애들보다 사실 더 잘 안다. 대부분 관심이 없기도 하고 굳이 올라오지 않으니까. 안타까운 건 탑 꼭대기에서 보는 시의 지붕들이 어디가 어디인지 설명이 없다는 거. 그걸 아는 사람이 아마 몇 안될거라는거-아, 뿌듯하다-. 아무튼 거기에서 보이는 풍경은 진심 강추다.
미겔레떼에는 꼭대기 미겔을 제외한 총 12개의 종이 있다. 안타까운 건 종들이 있는 부분은 꼭대기를 올라가다가 스쳐지나가게 되어있고 접근금지다. 각 종은 크기도 다르고 소리도 다르다. 그리고 이름도 가지고 있다.
요즘 대부분의 도시 카테드랄은 다 자동으로 종을 친다. 미겔은 매 정시 종을 치는데 이건 자동이다. 하지만 다른 종들은 대축일이나 행사가 있는 날은 종치기들이 직접 종을 친다. 행렬이 있으면 시내의 모든 종들이 다 함께 울리는데 대부분 직접 사람이 종을 친다. 미겔레떼의 종소리는... 정말 예술이다. 안들어 본 사람은 모른다. 며칠 뒤 성모승천 대축일에도 종을 칠 텐데... 작년 코르푸스 크리스티 때 종소리 녹음한 게 있었는데 sd 카드가 날라가면서 다 사라져버렸다. 엉엉. 대신 성모승천 대축일 종소리를 기대해야지.
아아.. 이상으로 발렌시아 카테드랄에 대한 안내는 끝.
참고로 카테드랄 입장료는 박물관관람을 함께 하도록 되어 있고 오디오 가이드 무조건 포함 7유로다. 언어는 아아주 여러개인데... 일본어만 있다-예전에는 중국어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없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라도 이 블로그를 보고 카테드랄을 가는 사람이 있다면 꼭 물어봐라. 한국말은 없니? 라고. 영어로 물어봐도 된다. 카테드랄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느 도시의 카테드랄이나 인포메이션이나 관광지를 가이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때에 꼭 물어보길 바란다. 한국어 없냐고. 이게 왜 중요한 포인트냐 하면, 한국 사람들은 스스로 유럽에 굉장히 관광을 많이 나오는데 한국어 서비스가 없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블로그들만 찾아다니며 정보를 얻고 블로그에서 소개해주는 곳만 간다. 관광지를 가도 당연히 한국어는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사용하거나 혹은 필수가 아니면 그냥 사용하지 않는 게 전부다. 그렇다고 가이드북 설명이 아름답게 잘 되어 있느냐, 업데이트가 잘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작년에 우연히 본 한국 사람이 가진 가이드북을 보니 파야스 일정조차 잘 못 기재되어 있더라. 정말 잘못된 정보가 많다는 거다. 그 모든 걸 일일이 바꾸라는 건 아니지만 하다못해 내 돈쓰고 가면서 나는 당장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뒤에 여행 올 누군가를 생각한다면 기본적으로 꼭 물어봐야 하는거다.
그라나다의 경우 한국 사람이 워낙 많이 가니까 한국어 설명버전이 있는 시내 순환 버스도 있다. 프라도도 알다시피 한국어 가이드가 있다. 물론 그 가이드가 다른 외국어 가이드처럼 완벽하지도 않고, 프라도의 경우 오디오가이드 설명버전과 동일한 가이드 북을 판매하는데 오디오 가이드에는 한계가 있더라도 가이드 북은 중국어 일본어 버전이 다 있다. 한국어 버전은... 물론 비싸고 굳이 그게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할말 없지만.. 바르셀로나도 구엘공원가면 1/3은 한국사람이다. 거기는 한국말이 더 많이 들린다. 그런데 한국어로 된 안내가 뭐가 있나. 홈페이지 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어므나 굳이 한국말 안내를 요구할 필요가 있나요.. 영어로 들으면 되고, 대충 블로그나 여행책자보고 다니면 되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그러니 그렇게 나와서 돈을 쓰고 가도 한국 관광객에 대한 존재감이나 서비스가 없는 거다.
개인여행 뿐 아니라 사실 가이드 투어도 마찬가지다. 중국이나 일본은 그룹투어를 오면 꼭 현지의 공식 가이드를 붙인다. 그러면 얼마나 관광을 오는지 집계가 된다. 그러면 당연히 그 나라 사람들을 위한 무언가 서비스를 고민하게 되는데 한국은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는 거다. 가끔 보이긴 하는데 길면 1시간? 딱 30분 있다가 간다. 그것도 한국에서 따라온 컨덕터 인솔하에. 컨덕터는 아무것도 모르시니 비르헨이나 레이나 앞에 사람들 던져두고 자유시간 주고 끝이다. 뭐, 그런 것도 그룹투어의 묘미니까 뭐라 할 말 없다.
그러나 개인 자유여행을 오면 꼭 어느 도시든 인포메이션에 들러 제발 '집계'되도록 하는 센스를 좀 부렸으면 좋겠다. 하다못해 현지에서 하는 호스텔을 이용해도 얼마나 오는지 집계가 된다. 민박집 가면 몇명이 왔는 지 집계되지 않는다. 즉, 돈 내고 나는 당장 못누리더라도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잠시만이라도 시간을 사용하길 바란다는 거다.
카테드랄 얘기 마무리하다가 다른데로 새어버렸네.
발렌시아 카테드랄은 마드리드의 새로지은 멋 없는 카테드랄과 다르고 바르셀로나의 고딕카테드랄과도 다르다-아, 이런데선 카테드랄 안가나?-. 혹은 프랑스나 독일의 고딕양식 카테드랄과도 다르다. 여기의 고딕은 지중해고딕양식이라 북쪽의 삐쭉함이 없는 고딕양식이다. 그리고 더운 여름에 해가 많이 들어오면 안되서-너무 덥다-해가 적게 들어오도록 창문도 작고 북쪽처럼 스테인드 글라스가 화려하게 있지도 않다.
여기서 얘기한 몇몇가지만 알고 카테드랄을 봐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돈 내고 보기 싫으면 이정도 선에서 땡. 그러나 설명한 것 이외에 더 많은 것들이 있으니 돈 내고 보는 것도 추천하는 바이다.
덧붙이자면... 매일 가는 곳이라 사진을 제대로 찍은 게 없어서... 모든 사진은 카테드랄 홈페이지에서 퍼온 것임을 밝힌다. (http://www.catedraldevalencia.es/galeria-catedral.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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